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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시작옛 조상들의 청렴 일화 (8월)
- 작성자
- 연구운영과
- 작성일
- 2019-08-05 10:35:38
-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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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조상들의 청렴 일화 – 이항복
이항복(1556~1618)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선조 13년(1580) 문과에 급제하였습니다.
호조참의 동승지 등의 벼슬을 거치고 병조판서와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당쟁의 조정에 힘썼으며 후에 청렴한 관리로서 ‘청백리(淸白吏)’에 추대되었다.
“내가 죽은 후 조복(朝服)을 입히지 말고 평상복인 심의(深衣)를 써서 염하라”
백사(白沙)라는 호처럼 깨끗한 모래 한 알로 평생을 산 이항복의 일생은 선비 정신의 구현이자 인간 승리의 표상이었다. 공신의 자리에 오르고 영의정까지 지낸 사람이 청백리에 녹선된 사실 자체가 그의 극기를 대변해 준다. 청렴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청광(淸狂)의 상태도 되지 않고 해학과 웃음 속에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조선 왕조 최대의 위기 상황이던 임진왜란에 슬기롭게 대응하고 국난을 극복한 사람이 이항복이었다.
기축년(1613년) 옥사가 일어났을 때의 일이다. ‘이춘복’이란 사람이 고발돼, 의금부 도사가 그곳을 가서 경내를 수색했지만, 문제의 이춘복은 잡지 못하고 엉뚱하게 ‘이원복’이란 사람을 잡아왔다. 그럼에도 국청에서 심문이 있었는데 이때 재관장이던 이항복이 “내 이름도 비슷하니 나부터 먼저 진술하여 변명해야 죄를 면하겠구먼”이라고 하자, 옆에 있던 좌의정, 우의정이 웃었다. 그러자 일순간에 삼엄했던 분위기가 바뀌어 옥사가 중단되고 말았다. 이 사건은 이항복의 기발한 농담으로 무고한 백성의 목숨을 건진 명재판이었다.
이항복(李恒福)은 매사에 청렴했으며, 어지러운 붕당 정치에 깊이 개입하지 않으려고 슬기와 인내로써 항상 조심하였으며, 본디 재치와 익살이 뛰어난 인물인지라, 그의 우스갯소리에는 모두들 웃으며 좋아했다고 한다. 어느 날 선조가 재치 넘치는 이항복을 엿 먹여보려고, 이항복을 뺀 다른 신하들에게 은밀히 다음 날 계란을 가지고 오라고 명하였다. 다음 날 다른 신하들은 모두 계란을 꺼내 선조에게 바치는데 당연히 이항복만은 계란을 바치지 못했다. 선조가 ‘걸렸구나’하고 속으로 웃으면서 왜 가만히 있냐고 하자 갑자기 이항복이 “꼬끼오!”하고 울었다. 선조가 이유를 묻자 이항복은 자기가 수탉이라 알을 낳지 못해 계란을 바칠 수 없다고 대답해 선조를 탄복시켰다고 한다.
이항복이 죽은 뒤 조선 중기의 한문 사대가 중 하나였던 월사(月沙) 이정구(1564~1635)는 “그가 관직에 있는 40년 동안 누구 한 사람 당색에 물들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지만 오직 그만은 초연히 중립을 지켜서 당색이란 찾아볼 수 없었으며, 또한 그의 문장은 이러한 기품에서 이루어졌으니 뛰어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고 하였으며, 성품과 행실이 높고 밝으며 탐욕이 없고 완벽에 가까웠던 이항복 기품과 높은 인격을 칭송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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